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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이치 요코이와 오노다 히로 : 태평양 전쟁 마지막 일본 군인

마이홈주의자 2022. 2. 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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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하갓냐 태평양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쇼이치 요코이 관련물
괌 하갓냐 태평양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쇼이치 요코이 관련물


오구마 에이지 선생의 '일본 양심의 탄생'을 읽던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후 무려 27년 동안 괌의 정글에서 살아 돌아온 일본군 병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도에 괌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하갓냐에 위치한 크지 않았던 전쟁 박물관에서 본 어떤 '일본인 사진'이 떠올랐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괌에서 봤던 당시는 아이들과 함께 간것이라 안내판등을 자세하게 읽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당시 찍었던 사진을 뒤져보니 책에서 언급한 쇼이치 요코이가 맞았다.
1941년 진주만 공격때 일본은 괌도 함께 점령한다. 1944년 여름 전황이 나빠지자 일본은 괌에 방어선을 쳤다. 이때 만주군이었던 쇼이치 요코이도 괌에 배치된 것이다. 1944년 7월21일 미 해병 55,000여명이 상륙했고 '괌 전투'에서 일본은 약 18,000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이후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 처럼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졌다. 쇼이치 요코이는 동료 두명과 함께 정글로 숨어들었다. 함께 생활하던 중 동료 두명은 죽었고 쇼이치 요코이는 1972년까지 혼자 생활하였다. 2.5미터 깊이의 동굴을 파서 대나무로 생활 공간을 꾸몄고 주로 과일과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인적이 없을때만 밖으로 나와 먹을 것을 구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지만 1972년 근처 마을 사람에게 발견되어 결국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의 나이가 이미 56세였다.
그때까지도 그의 머리속에는 '적에게 잡히면 그냥 자살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생각했던 것 같다. 쇼이치 요코이는 일본으로 돌아왔을때 '살아 돌아와서 죄송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한사람이 있는데 필리핀에서 1974년까지 29년간 저항을 이어간 오노다 히로 소위가 있다. 쇼이치 요코이와는 달리 오노다 히로는 주위 마을 사람들 수십명을 학살하면서 '전투'를 하며 살아낸 경우다. 이 사람은 1974년 당시까지도 자신의 생활 공간에 수류탄과 상당량의 탄약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던 일본 교수의 설득으로 일본에 돌아오게 된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수십명을 '살해'한 혐의는 없는 채로 돌아왔다고 한다. '혐의 없음'에 대해서는 아마 당시의 일본과 필리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쇼이치 요코이나 오노다 히로 모두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극우가 장악했던 당시 사회 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수 있다.
태평양 전쟁 박물관(Pacific War Museum)은 구색이 잘 갖추어진 박물관은 아니었다. 당시 사용된 무기류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 관련 글
일본 양심의 탄생 - 오구마 에이지
책 : 일본이라는 나라 - 오구마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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