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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평화기행 2일차 - 다크 투어

마이홈주의자 2022. 3. 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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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의 의미
동백꽃 뱃지를 받았다.
"동백꽃은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입니다"

제주4.3평화기행. 동백꽃 배지
제주4.3평화기행. 동백꽃 배지. 동백꽃의 의미.


* 제주4.3평화기행 2일차
- 동광리 무등이왓 : 사라진 동광리 마을. 130여호 전소
- 일제 동굴 진지, 섯알오름 학살터
-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 진아영할머니 삶터
- 제주공항에서 해산

1. 동광리 무등이왓
무등이왓 마을은 1948년 11월 130여 가구가 넘던 마을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00여명이 학살당했다. 현재는 마을의 터만 남아있고 아래와 같이 곳곳에 그 당시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최초학살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최초학살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광신사숙터 앞에서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광신사숙터 앞에서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광신사숙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광신사숙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잠복학살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무등이왓마을 잠복학살터 안내판. 전날 학살한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것을 예상하고 잠복하고 있다가 찾아온 사람을 산채로 불질러 죽였다.


2. 일제 동굴진지
섯알오름을 가기전 버스는 송악산 아래쪽에 멈춰섰다. 일제 동굴진지가 있었다.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근처의 다크투어리즘 안내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근처의 다크투어리즘 안내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 지어진 군사용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에서 바로 이곳 알뜨르 비행장 부근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따로 이렇게 다크 투어(Dark Tour) 프로그램까지 있다.

제주4.3평화기행. 셋알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셋알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안내판

입구부터 굉장히 크다. 설명에서 보듯이 제주에 존재하는 일제 동굴진지들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했다. 입구에서만 설명을 들었고 위험하기 때문에 내부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곳을 나중에 제주를 한번 더 갔을때 가보려고 근처를 갔는데 찾지 못했다. 주소를 적어둔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86-1

제주4.3평화기행. 셋알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제주4.3평화기행. 셋알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3. 섯알오름 학살터
1950년 8월 20일 2백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곳에서 두차례에 걸쳐 학살당하였다. 학살당한 이곳은 수년이 넘도록 출입금지되었다. 약 6년이 지난 1957년에서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시신들은 어찌 되었을까?
우리가 갔을때에도 아래와 같이 물이 고여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시신들이 쌓여있었으리라.
해설사(해설사께서도 제주4.3 피해자 유족이셨다)께서는 당시의 학살터 상황을 멸치액젖에 비유하셨다. 빗물에 고인 곳에 수백의 시신들이 뒤엉킨 채로 6년동안 방치된 상황을 그렇게 설명해주셨다.

백조일손(百祖一孫)
뒤엉켜 있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구별해서 수습할 수 있었겠는가. 시신을 구별할 수 없었기에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 억울한 유족들을 또한번 비참하게 한 사건도 있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쿠데타 세력에 의해 묘비가 박살나는 사건까지 있었던 것이다.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이곳에서 수백명이 한꺼번에 학살 당하였다.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안내판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제주4.3평화기행.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4.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평화 기행때 찍은 사진들보다 2016년도 방문 당시 찍은 사진이 더 나아서 그때 사진을 첨부한다. 당시 이야기만 듣고 가족들과 이곳을 갔을때 정말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제주도에 이런 일본 군사시설이 남아있다니.
제주도에 이렇게 많은 일본의 군사시설이 생기게 된 것은 지리적, 전략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 중간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처음 조성된 1930년대부터 전략적 요구에 따라 이후 2차례 더 확장이 되었다. 중국 폭격에 사용된 많은 전투기가 여기서 뜨고 내렸다. 총 20개의 격납고가 만들어졌고 현재 19개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총 20개중 19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알뜨르 비행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급수탑에 올라야 한다. 높이가 꽤 되고 계단도 가파르고 무섭다.
올라가서야 넓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급수탑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구조물이 아니다. 예전에는 알뜨르 비행장의 관제탑이라고 잘못 알려졌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비행장은 관제탑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 알뜨르 비행장 부지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의 제1훈련소로 사용이 되었는데 그때 지어진 급수탑이라고 최근(2010년대)에 와서야 밝혀졌다.
이곳 사진들은 제주올레 10코스의 길을 걸으면서 모두 만나게 된다.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
제주4.3평화기행.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 여기를 올라가면 알뜨르 비행장이 한눈에 보인다
제주4.3평화기행. 급수탑 위에서 본 알뜨르 비행장
제주4.3평화기행. 급수탑 위에서 본 알뜨르 비행장. 저 앞에 펼쳐진 들판이 비행장이다.


5. 진아영 할머니(무명천 할머니) 삶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진아영 할머니 생가였다. 무명천할머니로도 알려져 있는 분. 영문도 모른채 총을 맞아 턱이 없어진 채로 평생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항상 무명천을 얼굴에 두르고 계셔서 무명천할머니로 불리셨다.

제주4.3평화기행. 제주4.3평화기념관에 기록된 진아영 할머니
제주4.3평화기행. 제주4.3평화기념관에 기록된 진아영 할머니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제주4.3평화기행.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집 내부


제주도에 분포해 있는 4.3유적지는 100여곳이 훨씬 넘는다. 당시 제주도민 30만명의 10%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으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100여곳이 넘는 유적지는 제주4.3평화재단 4.3유적지 메뉴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제주다크투어 홈페이지에는 이들 유적지중 50여곳의 유적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출판된 책도 여러권이 있지만 허영선 시인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 있으니 읽어 보시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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