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일본 양심의 탄생 - 오구마 에이지

마이홈주의자 2022. 2. 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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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양심의 탄생 - 오구마 에이지
일본 양심의 탄생 - 오구마 에이지

책 제목 : 일본 양심의 탄생
저자 : 오구마 에이지

책의 원제는 '살아서 돌아온 남자 — 어떤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이다.
책 제목이 원제와 많이 다르게 출판되는 걸 심심치 않게 본다. 책을 읽고 나니 책 제목이 다소 엉뚱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구마 겐지의 생애 중 한 부분만을 부각시켜 제목을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책 출간 당시의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많은 기사에서 동료 포로였던 오웅근의 소송에 함께 참여한 부분을 집중 조명하며 '양심'을 언급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분들, 일본을 상대로 소송중인 강제동원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지원하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음을 볼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심지어 책 '적도에 묻히다'에 나오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양칠성의 흔적을 찾아 나선 우쓰미 아이코 선생의 경우는 1970년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양심의 탄생'이라니 너무 도서 판매만을 겨냥해 지은 제목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이지만 책의 내용은 아버지인 오구마 겐지가 겪은 전쟁과 전후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오구마 겐지는 일반인으로서 겪어낸 전쟁 당시의 일본에서의 삶, 태평양 전쟁 말기 만주군 시절과 패전후 전쟁포로로서 시베리아에서의 삶,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힘들게 겪어낸 결핵 환자로서의 삶 그리고 이후의 직장 생활들을 이야기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구술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책 곳곳에서는 아버지가 겪어낸 당시의 상황을 세계사적인 시각과 일본내의 당시 상황, 정책, 통계등을 함께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태평양 전쟁을 경험한 일본인 그것도 일반인의 시각으로 촘촘하게 쓰여진 책이 번역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평범한 일반인의로서의 삶을 기록한 현대사이자 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회고록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집에 있는 회고록들을 보니 모두 오롯이 저자의 목소리만 기록한 회고록 - 당연히 그래서 회고록이겠지만 - 이었다. 이 책의 경우 아버지의 구술 내용을 많이 적으면서 곳곳에 이에 대한 설명과 다양한 객관적 사실, 사회적 상황, 통계를 함께 기록한 책의 구성 형태가 흥미롭고 다른 회고록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더 다가오는 것 같다. 오구마 에이지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책의 구성 내용을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위와 같이 의도했음을 밝히고 있다.

책의 내용중 흥미로웠던 부분중 하나는 50년대말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당시 스포츠용품 회사의 외판원으로 생활했던 내용이다.
겐지가 다닌 스포츠 용품 회사도 고도성장기와 맞닿아 있다. 스포츠 용품 회사가 있었다는 얘기는 삶의 여유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 일본이 고도성장기 - 일본의 고도 성장기는 1955년부터 오일쇼크시기인 1975즈음이다 - 를 맞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인데 책 후반에 61년즈음에 스키를 타러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후에는 스키가 시들해지면서 골프 붐이 일어 회사에 좋은 장사 꺼리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고 이것이 당시 중산층의 생활상으로 일반화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p261에 1968년 조사한 레저/오락의 우선순위를 설문한 조사 결과가 나오는데 독서, 여행, 수예/재봉, 집에서 음주, 영화/연극 감상의 순으로 우리가 알고 있듯 일본인의 검소한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당시 한국의 상황을 볼때 상상할 수 없는 천양지차가 아닐수 없다. 최근에 한국의 경제 지표 몇몇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때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나뉜다.

첫째. 태평양 전쟁 말기 삶과 징집 후의 만주군 시절
둘째. 패전후의 시베리아 포로 이야기
셋째. 고도 성장기
넷째.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전후보상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겐지는 전쟁포로들의 모임에서 발간한 잡지에 나온 수기(맨주먹의 병사)를 보고 이 글을 쓴 동료 전쟁포로였던 오웅근을 찾아 나서게 되고 자신이 받은 위로금 10만엔 중 5만엔을 보내게 된다. 그 이유는 일본 정부가 '위로금'의 대상 범위를 자국민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일종의 사죄의 의미로 보낸 것이다. 전쟁 당시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인'으로  강제로 편입해 전쟁에 내보내 놓고나서 패전 후 '위로금'은 위로금 지급 시점의 자국민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였던 것이다. 이것을 알게된 오웅근은 일본에서의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데 오웅근의 부탁을 받고 겐지가 소송에 참여하게 된다. 일본의 자국민으로서 전쟁 보상 소송에 참여한 것은 오구마 겐지가 처음이라고 나온다.

오구마 겐지 선생이 생활고를 겪으며 워낙 여러군데를 돌아다니셨기 때문에 책에는 지명이 아주 많이 나온다. 홋카이도 - 혼슈 - 만주 - 시베리아 - 혼슈에 걸쳐 나오는 지명들을 일일이 구글맵에서 확인해 가면서 읽었다. 이번 기회에 시베리아 철도, 일본 지리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독후감이니 감상을 적어야 겠다. 언론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태평양 전쟁 관련 강제 동원 소송,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소송들을 접할때 남의 이야기, 때지난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넘어갈때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이번에도 여지 없이 역사란 과거와 어쩔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소송중인 여러 피해자 분들이 계신다. 대부분 소송에서 패소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의 논리가 책에 언급되어 있어 이 부분을 옮겨둔다. 

p322
말하자면 일본정부가 유지해온 원칙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전쟁 피해는 '국민이 다 같이 참고 견뎌야'하는 것으로 '보상'은 하지 않는다. 요구가 거셀 경우에는 '위로', '문안', '의료 지원'이라면 한다. 다만 정부가 직접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민간단체나 외부 단체가 만든 기금의 경우에는 다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신문 기자는 이것을 "보상은 하지 않는다. 사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로는 한다. 이것이 국가의 태도다"라고 요약했다.
 눈여겨 볼 것은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은 다른 나라의 전쟁 피해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국적이 있든 없든 기본적인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일본 국적이 없는 경우는 '위로'나 '의료 보장'도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은 아시아 전쟁 피해를 외면해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국적인 전쟁 피해자에게는 일본정부가 상당한 보상을 해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전쟁 피해자에게만 앞서 말한 것 같은 원칙이 적용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 국내의 전쟁 피해자 사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1988년 시베리아 억류자 '위로'가 그 후 다른 나라 전쟁 피해자 대응의 원형을 만든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부와는 별도의 '평화기념사업특별기금'을 만들어 거기서 위로금을 지급하는 형태는 그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
억류자의 보상요구운동은 전후 이른 시기부터 있었다. 그러나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 따라 일본정부는 소련에 대한 보상청구권을 포기했다. 한국정부가 1956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또는 다른 아시아 여러나라 정부가 일련의 국교 회복 협상으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처럼 일본정부도 소련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다.
 그 때문에 억류자들에게서는 1980년대부터 자신들의 노동임금 지불을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 근거는 군인 생활비용과 임금은 국가에서 지급할 의무가 있고 포로가 된 경우에도 생활비용과 임금은 출신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국제 관행이라는 것이었다.

p331
1988년 민주화 이전에는 일본에 전후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국정부가 억압했다. 왜냐하면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한국정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에 대한 전후보상 요구는 한국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
그러나 냉전 종식과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에 따라 이런 억압이 풀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보상 요구가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전 소련 포로들이 운동을 일으킨 것처럼 1991년 12월에 한국의 전 일본군인/군속 35명이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35명 중에 전'위안부'가 3명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종군위안부' 보상 요구의 시작이었다.

* 책의 내용과 상관없지만 오구마 에이지 선생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첫번째였는데 번역서임에도 간결하고 느낌이 좋았었다. 최근 영어 번역서는 굳이 사서 읽지 않는다. 번역체가 주는 특유의 따분함 때문이다(영어 서적 번역사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일본책의 번역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일본 서적이 번역이 그나마 쉬운건지 아니면 오구마 에이지 선생의 책이 문체가 간결해서 잘 읽히는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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